마침내 1988년, 안톤은 독자적인 운영체제 개발에 착수했다. 이름은 Cherish Unix로, ‘유닉스를 소중히 여기자’는 의미를 담았다. 이 운영체제의 설계 목표는 매우 분명했다. 첫째, POSIX(Portable Operating System Interface) 표준과의 완전 호환을 지향했다en.wikipedia.org. 그는 머릿속으로 켄 톰프슨(Ken Thompson)과 데니스 리치(Dennis Ritchie)의 초기 철학을 되뇌며, 가볍고 유연한 시스템 콜(interface)을 설계했다. POSIX는 1988년에 처음 제정된 IEEE 표준으로, 유닉스 계열 운영체제들의 호환성을 보장해주는 여러 API와 셸(Shell)을 정의한다en.wikipedia.orgen.wikipedia.org. 둘째, 기존 UNIX와는 다른 독창적인 쉘(Shell) 환경을 구현했다. 기본 명령어들과 더불어, 안톤이 직접 설계한 간단한 프로그래밍 언어 문법을 사용해 입력을 해석할 수 있게 했다. 셸은 다소 원시적이었지만, 그의 창의적인 발상에 따라 중요한 기능들을 유지하면서도 무거운 추가 기능은 제거해두었다. 셋째,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Graphical User Interface, GUI) 를 지원했다. 1980년대 중반에는 Unix 환경에서 GUI가 흔치 않았지만, 1984년 MIT에서 첫 X 윈도 시스템이 발표된 이후 1987년에 X11(버전 11)로 정착되었다theregister.com. 이를 참고하여 그는 X11보다는 훨씬 단순하지만 누구나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자체 GUI를 고안했다. 이 GUI는 극히 기본적인 메뉴와 윈도우 기능만 있었지만, 과거 DOS 창만을 쓰던 사용자들에게는 신세계와도 같았다. 마지막으로 그는 구조적 설계를 강조했다. Cherish Unix는 초보자부터 소득이 낮은 계층까지 모든 사람이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게 설계되었다. 복잡한 권한 관리나 어려운 설정 방식 대신, 계층화된 메뉴와 단계별 안내를 도입했다. 심지어 프로그램 설치나 업데이트도 플로피 한 장으로 이루어질 수 있게 하여, 그 시절 흔하지 않았던 완전 비상업적 커뮤니티 지향 운영체제의 모습을 띠게 했다.
이 무렵 컴퓨터계의 거대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소프트웨어 업계에서는 유닉스를 둘러싼 판도가 복잡했다. 1988년에는 AT&T 벨 연구소와 썬 마이크로시스템즈(Sun)가 GNU 계획에 대응하려는 움직임으로 ‘오픈 소프트웨어 재단(Open Software Foundation, OSF)’을 결성했고en.wikipedia.org, 곧이어 AT&T·HP·IBM 등의 그룹이 ‘유닉스 인터내셔널(Unix International, UI)’을 만들어 대립했다en.wikipedia.org. 이렇게 서로 다른 유닉스 파벌 간 경쟁은 “유닉스 전쟁”이라 불리며 활발히 진행됐다en.wikipedia.org. 안톤은 그 소용돌이를 멀찌감치 지켜보며, Cherish Unix가 대기업 논리가 아닌 진정한 기술정신을 담을 수 있기를 바랐다.